학림다방 혼자, 찍거나 쓰다



 학림. 학림에 갔다.
 책으로만, 말로만 보고 듣던 이곳에. 우연히 간판을 본 것 만으로 가슴이 막 뛰었다.
 서슬퍼런 역사를 버티어낸, 세월을 거스르지 않고 남아온 공간이 가지는 자연스런 힘이 이곳에는 있었다.

 도종환의 시와, 온갖 문인들의 사진만으로도 도무지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 맛은 별로였다. 상관없었다. 학림에 왔는데 커 피맛이 무슨 상관이고, 사람이 많은게 뭐가 대수겠는가.

 버스를 기다리다가 연인을 보내고 지하철로 내려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조금 쓸쓸해졌다.

 버스에서 최백호가 진행하는 라디오가 흘러나왔고,
 집에 와서 낭만에 대하여를 한참 들었다.

누군가의 희생과 누군가의 피 덕분에 어쨌든 나는 남아 내 노동으로 살고, 학림에도 가고,
쓸쓸해도 하고, 낭만도 생각하며 경우없이 사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학림에 또, 가야겠다.

2011년 10월30일날 쓴 일기다.
학림에 또 가야겠다,고 쓰고는 약 1년 2개월만에야 겨우 다시 오게 됐다.
시간의 힘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 남아 누군가의 추억이 되는 동시에 
누군가의 지금이 되어주는 공간이 대개 그렇듯, 학림은 변한 것이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었다.

음악이란 좋은 것이다.
음악에는 항상 이치와 윤리를 초월한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와 함께 엮어진 아름다운 개인적인 정경이 있다


아마는 공간도 비슷한 결이라고 생각한다.
이치와 윤리를 초월하진 않았겠으나 이야기가 존재하고, 아름다운 나만의 정경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하는 수 없이 '당신'을 떠올렸다.
공간은 여전한데 우리는 변했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재잘 재잘 거리던 그 눈빛을 생각했다.
기억하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즐거운 시절의 기억은,
차라리 무참하다.


 사람들은 혼자서, 또는 여럿이서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풍경을 보기도 한다.
 일년 뒤 이 사람들에게 학림은 어떤 공간,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빈자리가 하나 밖에 없어 나는 그때 앉았던 그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일년이 지났지만 또렷이 떠올랐다.
 그 사람, 내가 참 많이 울렸다. 
 이런저런 파국의 상황들이 있었지만, 파국을 자초한 것은 나였고 그 덕분에 나는 좌초됐다.
 
 
 홀로 탁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아주 쓴 커피를 마셨다.
 언젠가 그녀가 개그우먼 오나미 어쩌고 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밤새도록 울었다고 나중에 그랬었다.
 지금 그 사람은 기억도 못하겠지만 내게는 이상하게 그것이 마음에 남아 
 지금도 개그콘서트 같은데서 오나미가 등장하거나 이름이 언급되면 가슴 한쪽이 찌르르르 거린다. 

 일년 전의 학림을, 8개월전의 당신을, 6개월 전의 우리를, 그리고 지금의 나를,
 생각하고, 생각했다.    
 
 학림을 나오며 알았다. 
 학림은 지금의 나에게 반성의 기록이고, 후회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을.
 학림에 이제 오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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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죽음에데스 2012/12/18 13:42 # 답글

    저도 여기 갔던 기억이 있는데 다시 사진으로 보니 새록새록 옛날 생각이 납니다.
    2층 어딘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는데 실은 바디가 무겁고 어쩌고 커피 맛은 잘 몰라서 그냥 분위기에 흠뻑 취했던 추억이 있네요. ^^
  • 꿈의정원 2012/12/18 16:57 #

    저에게도, 특별한 곳이지요. 그리하여... 저도 커피맛은 그저 그랬는데, 그 독특한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구요...그것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아주 특별한 힘이라고 생각해요.
  • 2012/12/18 14:2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8 17:0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프라이오 2012/12/18 16:04 # 답글

    로얄 블렌드가 마시고 싶어지지 않습니까아..... ㅠ.ㅠ
  • 꿈의정원 2012/12/18 17:00 #

    저는 스트롱을 마셨습니다. ㅎㅎ 진하고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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