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책에 쉬엄 쉬엄 가요란 코너가 있는데 어쩌다 거기에 쓴 원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여기에도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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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첫사랑의 추억
그러니까 열세 살 무렵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없었고, 좋아하는 게 없었다. 산다는 건 그저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지금 돌아봐도 좀 희한한 아이였다. 그러던 중에 부모님의 강요로 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녀를 만났다. 희고 고운 아이였다. 배꽃 같다고 해도 좋고, 백합 같다고 해도 좋았다. 의욕이란 것이 없던 소년은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고 좋아하는 게 생겼다. 아! 사랑은 참, 위대하기도 하여라.
그때부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어느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로 나온 김동률이 선곡한 산울림의 “회상”은 불난 가슴에 더할 나위 없는 기름이 되어주었다. 처음 알았다. 음악이란 것이 이렇게나 좋고, 이렇게나 슬프다는 걸. 전주도 없이 “길을 걸었지~ 누군가 곁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나 버린 후라는 걸” 로 시작하는 노래와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는 소년의 가슴을 찢었다. 바야흐로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HOT와 젝스키스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산울림을 비롯한 옛 가요들을 듣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몇 없던 친구들은 모두 떠나갔지만 외롭지 않았다. 세상이 온통 그녀였으니까. ‘회상’을 들으면 그녀가 생각났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들으면 그녀가 그리웠고, ‘내게 사랑은 너무 써’를 들으면 그녀가 아팠다.
숱한 불면과 가슴앓이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결심했다. 고백하자. 과감하게. 그리워 죽으나, 차여서 부끄러워 죽으나 마찬가지 아닌가. 문제는 어떻게? 였다. 막 첫사랑에 빠진 열세 살짜리 남자 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 리 없었다. 머리를 짜내고 짜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나는 비장의 고백을 준비했다. 결국, 준비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 그게 잊히지 않을 박정우 인생에 길이 길이 기억될 부끄러움의 시초가 될 줄은.
시간을 흘러 흘러 결심의 날이 다가왔다. 명량에서 적을 맞겠다던 이순신 장군의 심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쭈뼛대며 할 말이 있으니 잠깐만 얘기 좀 하자고 뒤뜰로 불러냈다. 그녀는 뭐지? 싶은 눈초리였지만 말없이 따라왔다. 여름이었고, 좀 후덥지근했고, 떨렸고, 달이 유달리 밝았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눈은 반짝 반짝 빛났다.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짜내어 검고 깊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오래도록 고민하고 준비했던 고백을 시작했다.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그랬다. 내가 준비했다는 고백은 바로, 산울림의 너의 의미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오직 노래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고, 내 마음이 이 가사에 들어있으므로 별다른 말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중에 노래방을 몇 번 가보고 알았지만 나는 심지어 박치다!) 어쨌든 꿋꿋하게 노래를 이어갔다.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너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지나, 다시 “너의 그 한마디 말도” 로 돌아오는 동안(‘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에서 끝낼 생각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호기심’에서 서서히 ‘난감’으로 변했다. 그리고 거의 ‘당혹’에 다다를 때쯤 겨우! 노래가 끝났다. 나는 생각했다. 이제, 다 이루었도다.
‘네가 대답할 차례야. 내가 방금 무려 너의 의미를 부르며 고백했잖아?’ 속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그때였다.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리고 후다닥 하는 소리를 내며 저 멀리로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수사로써가 아니라 정말로 빛의 속도였다. 이봐, 나는 헤치려는 게 아니야. 그저 사랑에 빠졌을 뿐이라고. 허공에 대며 외쳐보았지만 떠나는 그녀는 말이 없었다. 슬픈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그렇게 빨리 뛰는 여자사람은 본적이 없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허무하게 끝났다. 당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선곡이 문제였어, 선곡이. 문제는 선곡이 아니라 ‘나’ 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의 일이다.
처음엔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찰 만큼의 부끄러움이지만 지금은 그냥 추억이 됐다. 좋은 음악이 대개 그렇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간혹 생각한다. 그녀도 혹시 너의 의미를 들으면 그때 그 지질했던 열세 살의 남자아이를 기억할까? 하고. 최근 김창완 밴드가 “E메이저를 치면” 이라는 신곡을 발표했다. 나는 E메이저를 모르고 F샵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은 알지.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도 있지. 그래서 나는 추억도 음악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다. 지금에 와 겨우 이 얘기를 할 수 있겠다. 한 시절, 당신 때문에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었던, 세상이 온통 당신으로 가득했던, 너의 의미를 몇 번이고 연습했던, 사랑이라는 말로 밖에 부를 수 없었던 어떤 소년이 있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고 말이다. 혹시 아는가, 그녀가 작은책 같은 훌륭한 잡지를 보는 여인으로 성장했을지. 여기까지 쓰고 나는 또 생각한다. 이제, 다 이루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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