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10권 책과, 대화하다

내 인생의 책 10권 어쩌고 하는데 지목받았다. 그 기록을 블로그에도 남긴다. 페북에도 그랬지만 다음 사람 지목은 없다.


1. 박민규 -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나에게 박민규는 가장 뛰어난 작가는 아닐지 몰라도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작가였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서야 생각했다. 부끄러워 하지 말고, 부러워 하지 말기로. 덮어 놓고 뛰지 않기로. 와와 하지 말고 예예 하지 말기로.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이니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기로. 치기 어려운 공은 억지로 치지 말기로. 나에게 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어떤 철학 같은게 있다면 그것은 오롯이 박민규의 공이다. 그는 좋은 작가이가, (나에겐)  좋은 '선생' 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나는 중요한 것을 배웠다.


덧붙여 내가 만약 영화 감독이 된다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다. 여주로는 박지선을 캐스팅 하고 싶었다. 그녀는 놀라울 만큼 못생겼지만, 믿을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우니까.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 새로운 여주인공을 물색중에 있다.(주인공이 스물이라..) 물론 영화를 찍겠다는 꿈은 없습니다만.


무튼 이래저래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남긴 책.


2. 김애란의 단편들
지금 우리 나라에서 남녀 통틀어 김애란 만큼 단편을 잘 쓰는 작가가 있나. 그녀는 슬픔을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낼 줄 아는 작가이자, 가장 연애를 잘 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작가다.  앨리스 먼로가 노벨 문학상을 탄거 보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밸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건 어쩌면 황석영이나 고은이 아니라 김애란 일지도 모른다고. 예상보다는 바람에 더 가까운 이야기.  (두근두근은 제외)


3. 김훈의 소설들과 에세이
김훈의 문장은, 아름답다. 오래 머무른다. 오래도록 곱씹어야 한다. 어제 읽을 때와 오늘 읽을 때가 다르고, 스물에 읽을 때와 서른에 읽을 때가 또 다르다. 사유하게 하고고, 철학하게 한다. 이보다 완벽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읽어 내려 가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족된 밤도 있었다.
 
4. 호시노 미치오 -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노던 라이츠
알래스카에 반한 호시노 미치오는 18살때 알래스카의 마을 이장에게 편지를 보낸다. "저는 일본에 사는 호시노 미치오라는 학생입니다" 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그로부터 몇 년 후 답장을 받게 되고, 그게 그의 인생을 바꾼다. 위의 두 책은 그가 곰의 습격을 받아 운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일생을 알래스카에서 보내며 자연과 사람과 동물들을 찍고 쓴 기록이다.


책에 보면 한컷의 사진을 찍기 위해 3일 밤낮을 기다리며 개고생하는 이야기들을 굉장히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서술하는 부분들이 나오는데, 읽다보면 마치 아니 좋아하는 걸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반문 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애정" 이라는 것의 깊이와 그런 깊은 애정에서 나오는 글과 사진의 힘을 매 순간 느낀다.


간혹 흔한 자기 계발서나 강연등에서 나오는 질문, 꿈을 이루고 싶은데 그 과정이 어쩌고 하는 고민들을 종종 보는데 그런 이를 실제로 만난다면 나는 강신주의 독설이 아닌, 김난도의 위로가 아닌, 호시노 미치오의 "삶"을 권하고 싶다. 이런 저런 의미들을 걷어치우더라도 "알래스카..."과 "노던 라이츠"는 빼어난 에세이다. 


5. 순간의 꽃
고은의 짧은 시집. 자연앞에 아무것도 아닌 인간, 혹은 어떤 찰나의 아름답고도 절묘한 순간을 고은선생의 시선에 담았다. 시라고 하기에도 굉장히 짧지만 울림은 크다. 두고 두고 새길 만한 글이고,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좋다.  순간의 꽃을 보면서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떠올렸다. 내 생각에 고은이 몇 수는 위다.


6. 이오덕 일기
이오덕 선생의 42년 간의 일기를 모은 책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건사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사람다운 삶이란 무엇인지, 아이를 가르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가 고스란히 나와 있다. 책 첫머리에 나오는 짧은 설명 만으로 이미 마은을 빼앗긴다. "이 일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글쓰기로 평생의 삶을 다듬어 온 한 사람의 기록입니다"
내가 교육부 장관이라면 모든 선생들에게 이오덕 일기를 필독서로 삼겠다. 단언컨대, 그렇게 한다면 대한민국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7. 김규항의 예수전과 B급 좌파 시리즈
사회주의자가 머리에 뿔달린 괴물이 아니라 '사람'의 사상 이라는 것을 나는 선생을 통해 배웠다.  나에게 청년 예수에 대해 두런 두런 들려준 이도 그였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해준 것도 그였다. 나는 지금도 김규항 선생만큼 리드미컬 하면서 쉽고 정교하고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 글을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8.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시에 관해 평론하는 신형철의 글은 평론을 넘어 그 자체로 한편의 시같다. 나는 느낌의 공동체 때문에 이래저래 지출이 심했다.

'이 멋진 무분별의 에너지를 '강정'이라 부르자. 강정은 동사다' 라는 문장에서 강정을, '시인 김경주는 전천후다' 로 시작하여 '<나는 전생에 사람이 아니라 음악이었다> 라고 말하는 벗이여, 너의 현생까지도 음악이다' 로 끝맺는 글 앞에서 김경주를, '애틋한 긍정에서 애절한 부정까지가 바로 김선우 시의 넓이' 라는 글에서는 또한 김선우를 접하기 않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는 좋은 평론가이자, 뛰어난 글쟁이다. 그는 시라는 깊고 어려운 세계로 내 손을 잡고 천천히 안내해주었다. 덕분에 김소연을 알았고, 함성호를 알았고, 문태준을 알았으며, 정끝별과 황병승을 알았다. 감사한 일이다.


9. 권산의 책들
나는 선생이 지금까지 출간한 모든 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는 모든 책을 살거다. 나는 사실 권산 빠다. 그의 글엔 어떤 결기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자연과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이가 가실수 있는 종류의 힘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한때 그는 나의 저자였다. 글과 삶이 일치하는, 글만큼 삶도 존경스러운, 글에도 삶에도 유쾌함과 유머와 멋과 진심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10. 우린 잘 있어요, 마석
격하게 아끼는 우리 회사 책이 몇 있다. 그중에 하나다. 나는 이 책이 아주 아주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애정은 관심이다. 관심은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떻게 지내는지, 아픈데는 없는지, 연애는 하는지, 힘든일은 없는지를 살피는 것.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대게 두 가지다. 경멸하거나 불쌍해하는 것. 이 책은 마석의 이주노동자들을 찬찬히 살핀다. 애정을 담은 시선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떤 문화를 형성했고, 어떤 사랑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고, 뭘 하면서 놀고 어떤 문제들이 있는지를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이해하게 한다. 주장하지 않고 관찰하는 책. 그래서 좋은책. 안타깝게도, 비운의, 걸작. .


덧글

  • 취한배 2014/10/01 14:09 # 답글

    인생의 책 10권, 답하기는 어려울 텐데 그 답을 공유하고 읽으니 좋네요.ㅎㅎ 호시노 미치오를 저는 <여행하는 나무>로 접했는데 저도 참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신형철 평론가와 <우린 잘 있어요, 마석>까지 정원 님 인생의 책 10권이 정원 님을 무척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소중한 글 읽고 갑니다.
  • 꿈의정원 2014/10/03 10:53 #

    여행하는 나무도 좋아합니다. ㅎㅎ 읽는 책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라... 정말 읽은 책만큼만 살았으면 좋겠네요. ㅋ 고맙고 고맙습니다.
  • 고운 2016/10/17 04:01 # 삭제 답글

    덕분에 '우린 잘 있어요, 마석'을 재미있게 읽었어요. 읽고 나서 농민들이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이 이제 뉴스로도 잘 보도되지 않아 접할 수 없는, 한국 농촌 살이에 대한 좋은 르포도 읽어보고 싶어졌는데, 혹시 아는 것이 있으시면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고 얼마 전에 쓴 후, '안녕, 주정뱅이'에 신형철씨가 붙인 작품 해설을 보고, 여기에 적힌 인생의 책 10권을 다 보아야지 싶어 다시 왔습니다.ㅎ 전혀 다른 분야에서 다른 것에 대해 쓰고 있는 신형철의 글을 읽고 왠지 김규항의 글이 연상됐어요.
  • 꿈의정원 2016/11/19 02:37 #

    안녕하세요 ㅋ 거의 무너진 집과 다름없는 이곳에 들러주시고, 책도 읽어주셨다고 하니 반갑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고운님 덕분에 저는 권여선의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고, 신형철의 글을 찾아보게 되네요. 그또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너무 늦은 답글에 또한 송구스럽다는 말씀도 함께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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