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영화들 단평 영화를, 느끼다


her(그녀) : her(그녀)는 관객들에게 인공지능 os와의 사랑을 느리지만 분명하게 설득해낸다. 여기엔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가 한 몫 한것도 있겠지만, 가까운 미래라는 시간 설정, 인공지능 os와 사랑에 빠지는 경우를 종종 보여 준다던지, 주위에서 별로 놀라지 않는 모습같은 장치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이런 합리위에서 현대 인간의 쓸쓸함과 고독을 과하지 않은 톤으로 그려내는 한 편, 사랑에 빠지고 갈등하고 화해하고 즐거운 날들을 보내고 설레고 그러다 결국 소멸하고 아파하는 연애관계를 유려하게 보여준다. 이런 영화가 좋지 않을리 없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최인훈의 문장이 생각났다.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사랑을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외로움이 사람의 몸을 만들어 냈다" 사랑에 빠진 사만다는 무척이나 "몸"을 갖고 싶어했다. 그 장면이 떠올랐다. 씨발. 사랑해야지. 나는 비록 비루하지만 몸을 갖고 있지 않나. 사랑이란 것을 하고 싶어 갖게된, 그게 아니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이,몸을.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
나는 꼭 봐야할 영화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 그렇다. 뒤늦게 겨우 영화를 볼 수 있었고, 후회했다. 극장에서 보지 않을 것에 대해서. 

30일 시한부에 에이즈 판정을 받은 론 우드로프가 살아남는 과정에서 학계에서 쓰는 약보다 훨씬 좋은 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에이즈 환자들을 대상으로 약을 팔기 위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든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우정을 쌓아가던 게이 친구를 잃은 뒤 돈이 아니라 에이즈 환자들을 위해 법정에 서게 되는 과정을 리드미컬하게 그려낸다. 그 과정속에서 의약업계의 비리, 거대 제약회사와의 결탁 등에 대한 묵직한 문제들도 함께 건드린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은 한사내의 일대기이자 동시에 한편의 성장영화였다. 

매튜 맥커너히는 각 장면마다 가장 적절한 톤과 표정과 감정을 포착해 낼 뿐 아니라, 에이즈 판정을 받고 차에서 흐느껴 우는 씬부터 능청스런 신부연기까지 넓은 연기의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매튜 맥커너히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통해 연기 장인이 되었다. 


조난자들
 : 2010년 즈음 나를 가장 배꼽잡게 했고, 가장 많이 봤던 영화는 노영석의 낮술이었다. 그의 다음을 내내 기다렸다. 그가 5년만에 돌아왔다. 놀랍게도 스릴러를 가지고.

나는 그가 영리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낮술에서도, 조난자들에서도 그의 배경은 여행지의 어느 낯선 곳이다. 그래서 일상속에서라면 좀 말이 안된다 생각하는 모든 설정들이 가능해진다.

여행길에선 누구도 마주칠 수 있다. 나를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고, 위기에 나를 구해준 이가 알고 보니 나를 강간하려고 하는 동성애자 일수도 있다.(낮술) 당연히 무언가 의심스러운 전과자를 만날수도 있다.(조난자들) 이런 낯선 상황을 웃기게 비틀면 노영석표 코미디가 되고, 잔인하게 비틀면 노영석표 스릴러가 된다. 

서로에 대한 편견과, 묘한 관계 설정, 기묘한 인연들이 만나 낯선 파열음을 만든다. 그 속에서 이끌어내는 블랙코미디스러운 웃음과 소소한 긴장, 소소한 반전으로 종반부 까지는 무난하게 영화를  끌어간다. 하지만 문제는 결국 한방이다. 반전 이후 커다란 무언가가 있겠지 있겠지 하는 기대만 잔뜩 심어놓고 갑자기 영화가 끝나버려서 이 양반이 제작비가 모자랐나 싶은 생각까지 들게 한다는 것은 두고 두고 아쉽다.

잽이 무수히 쌓이고 쌓이고 쌓이면 언젠가 다운이 될 수도 있고, 판정승을 거둘수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ko는 힘들다. 종반부에 큰 한방 없이 수작의 영화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 일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판정승이라고 말하기도 좀 애매하다. 하는 수 없이 노영석의 다음을 또 기다려야겠다.



인간중독 :
 밝히자면 나는 김대우의 충실한 관객이었다. 정사부터 방자전까지 세산의 평가와 관계없이 나는 그의 영화가 좋았다. 하지만 인간중독 만큼은 그럴수 없겠다. her가 좋은 영화일 수 있는 결정적 이유는 다소 황당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설득해낸다는데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인간중독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을 제대로 설득해 내지 못한다. 군인 사회의 폐쇄성은 리얼하게 그려내지 못했고, 경우진의 캐릭터는 끝나는 순간까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엄마의 입을 통해 나쁜놈이겠구나 싶을 뿐이다. 그런데 종가흔과 김진평은 미칠만큼 서로 사랑한단다. '왜' 가 이해되지 않는데 영화에 제대로 몰입될리가 없지. 섹스씬도 그냥 그랬다. 

그래도 종반부까진 그냥 저냥 볼만하다. 둘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간간히 비춰지는 인간군상에 대한 풍자도 그렇고(이를테면 상사가 권력을 잃을 지경에 처하자 정신병자니, 인간관계가 약하니 하고 수근거리던 이들이 진급했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모여들어 사랑과 존경을 쏟아내는 광경이랄까), 김진평이 종가흔을 위해 취한척 노래를 부르고, 종가흔은 그를 위해 억지로 총장과 부르스를 추는 씬들을 꽤 괜찮기도 했다.

하지만 막판 들어 본격적으로 김진평의 '오바' 가 시작되면서 영화는 급격히 무너지면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다. 2시간을 참아왔던 관객으로 하여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를 부르짖게 한다. 이래저래 통제 불능의 안타까운 영화였다. 

인간중독에서 가장(그리고 거의 유일하게) 좋았던 것은 엔딩곡이었는데 Tesima Aoi가 부른 The Rose 라는 곡이다. 나로선 이 기막힌 노래와 이런 목소리를 가진 가수가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것이 그나마 인간중독의 최대 미덕이었다. 다만 영화를 보느라 앉아 있었던 2시간 보다 극장을 나가려던 순간의 3분이 훨씬 가치로웠다는 사실은 이 영화를 만든 이들에게서나, 나에게서나 아무래도 좀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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