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당_ 잊지 못하는 순간을 말해본다. 이런 저런

요즘 트위터에서 유행인데 여기 써봄.

1. 나의 첫 기억은 외할매다. 어린 시절의 나는 외할매 손에 자랐다. 여름이였고, 나는 외할매의 젖을 만지고 있었다. 외할매는 늙어갔고, 나는 그 늙음을 먹고 자랐다. 내가 말을 안들으면 외할매는 맨날 너 이러면 천장만장 간다고 나를 협박(?) 했고, 나는 울었다. 지금 외할매는 천장만장에 갔다. 내가 말을 안들어서 그런건 아니었겠지만. 그곳이 좋은 곳이였으면 좋겠다.

2. 어린시절의 나는 좀 이상한 아이였는데, 눈을 감고 무언가를 멋지게 해내는 걸 특히 좋아했다. 눈을 감고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내려오다가 벽에 처박아서 깁스한 적도 있고, 눈감고 걷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입원한 적도 있다. 지금은 라섹했다.

3.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지각 안하려고 학교를 향해 뛰어가다가 갑자기 내가 씨발 왜 이러고 사나 싶어 교복마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그 길로 가출했다. 3일쯤 지난후 거지꼴로 집으로 복귀

4. 아버지가 물었다. 너 대체 어쩌려고 이러니. 내가 말했다. 제 꿈이 뭔줄 아십니까? 알람에 깨지 않는 삶입니다. 그 말을 듣고 엄마가 울었다.

5. 학교를 자퇴하던 날, 계단에 앉아서 cd 플레이어를 꼽고 밥딜런을 들었다. 해가 좋았다. 그날의 하늘을 아직 기억한다.

6. 보고싶어. 한 마디에 너를 만나러 달려갔다. 밤이였고, 입에서 김이 막 나오는 날씨 였는데 하나도 춥지 않았다. 그때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가만히 안고 있기만 해도 좋았다. 그렇게 안고, 얼굴보고, 입맞추면 행복감으로 온 마음이 터질 것 같았던, 그런 때가 있었다. 글의 맥락상 머릿속으론 온갖 야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는 건 굳이 얘기 안하는 게 좋겠지.

7. 탄산수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그녀는 우리집에 올 때 탄산수를 바리바리 싸가지고 왔었다. 어떤 날에는 열개가 있었고, 어떤 날에는 스무개가 있었다. 탄산수를 턱 내려놓으면 엄청 무거웠어~~ 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엄청 귀엽게 말했다. 사랑이란 어떤 여름날 누군가를 위한 봉지를 가득채운 탄산수 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했었어. 

8. 처음 우리가 같이 살기로 했던 날에, 당신은 나에게 밥을 차려 줬었다. 나는 백수였고, 이제 막 서울에 올라와 아는 사람도, 가진것도 없었다. 도시락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던 그때, 국과, 스팸과, 몇가지 반찬과 계란에 흑미밥을 보고선, 그게 너무 따뜻해서 한 술 뜨지도 못하고 펑펑 울기만 했었다.

9. 사랑했던 누군가와 헤어지고, 후배를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물었지. 그래도 연애란 게 헤어질 땐 아프고 원망도 들고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고, 좋게 기억되는 거 아니니? 그러니까 후배가 말했었다. 좋았던 기억만 좋구요, 좆같은 기억은 영원히 좆같아요, 거 참, 명언일세.



또 써야지~~~

텃밭 일지 일상을 기록하다

요즘 집에 오면 넷플릭스의 드라마를 대략 5시간씩 보거나 서울을 그리워하거나 음식을 만들어서 술과 먹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책은 안본다. 만드느라 너무 힘들어서 그렇다. 흐미 ㅡㅡ;;

거의 유일한 취미 생활이라면 텃밭을 가꾸는 일인데, 이사올 때 심은 바질이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시금치랑 루꼴라는 시들었고, 방토랑 바질은 잘 자란다. 세상이치 다 그렇구나 싶기도 한데 따지고 보면 내가 초보라서 그런거지 뭐...;;

하여튼 뭔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벌레 먹은거 보면 속상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 귀찮기도 하다.


어쨌든 그냥 두면 바질정글이 될 것 같아서 좀 따서 페스토를 만들었다.

친구들이랑 술 먹던만큼 집에서 혼자 먹으니까 딱히 건강이나 돈에서 좋을 건 없다.

걍 일 - 퇴근 - 함께 먹고 즐기고 - 귀가 -일의 사이클에서 (함께)만 빠졌을 뿐인데 몹시 무료하고 그렇다.


어쨌든 바질을 갈다가, 남으로 창을 내겠소가 생각났다.

페스토가 숙성하면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쓰고보니 결론없네. 아하하하하하하하



신부님과의 대화 책과, 대화하다


탄자니아에 간 신부님이 오랜만에 연락을 줬다. 내용은 이러하다.

시간이 많아서 요즘 책을 많이 읽는다. 최근 너의 인스타를 보고 두근 두근 내 인생을 읽었는데 아직 리디북스에 바깥은 여름은 안나온 모양이다. 괜찮은 책이 있으면 추천햐줘라.

나는 긴 답장을 보냈다. 꼭 신부님께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누군가 묻는다면 답은 같다.

  
우선, 재미를 위주로 말하면 저는 가장 처음으로 김언수를 꼽습니다.
설계자들, 캐비닛은 필독서라 봅니다.
단편인 잽과 최근작 뜨거운 피도 좋아요.
다만 뜨거운 피는 조폭이야기라서 취향에 안맞을 수도 있겠지만 완성도나 재미 면에선 본다면 읽어서 후회할 리 없습니다,
당연히 정유정은 보셨으리라 믿지만 혹시 7년의 밤이나 종의 기원을 안보셨음 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만합니다.
28년은 상대적으로 별로고.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지만(마지막에 xx 성당에 계셨으니 관심이 없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황현진의 "죽을 만큼 아프지 않아" 와 안보윤의 "사소한문제들", 가장 최근에 본 손원평의 "아몬드" 추천입니다.
(아몬드의 손원평은 손학규 딸이라는데 정말 금수저에 능력까지 ㅠㅜ)

특별히 신부님께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호시노 미치오의 책들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알래스카를 좋아했던 그는 알래스카 촌장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저는 알래스카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입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으니 저를 초대해주셨으면 합니다" 6개월 후에 그는 답장을 받습니다, " 여름은 카리부 사금 사냥의 계절이지요. 그래서 사람이 많이 필요하답니다. 오신다면 언제든 환영하겠습니다." 그 이후로 알래스카로 간 호시노 마치오는 일생을 그곳에 살면서 동물들과 풍경을 찍고 씁니다.

카리부를 찍기 위해서 삼일 밤낯을 기다리는 과정을 덤덤히 서술하는 그의 글을 보면서 저는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서 이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야?" 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더 행복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많은 사람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입니디.조금 결이 다를순 있겠지만, 신부님을 보면서 호시노 미치오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알래스카 바람같은이야기나 노던 라이츠 같은 책은 일생을 두고 읽을 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10권 가까이 되겠네요. ㅎ 요즘 이런저런 불안함과 이런저런 선택과, 이런저런 고단함을 보내는 와중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신부님 생각을(예전보다 훨씬) 더 하게 됩니다. 아프지 마시길.



어떤 신부님 일상을 기록하다


나는 성당에 다닌다. 그리고 되게 좋아하는 신부님이 있었다. 스님의 주례사가 한창 유행하던 때여서 출판계 키드였던 나는 법정스님의 그 명저를 잡을 책으로 신부님의 연애코칭을 기획했고, 존나 목적적으로 신부님께 접근했다. 그리고 메일을 보냈다, 제가 혼자 서울에 와서 되게 외옵게 살고 있는 독거 청년인데 혹시 면담 한 번 할 수 있나요? 신부님은 흔쾌히 한 번 보자고 했었고, 그 자리에서 나는 당신의 강론을 책으로 내면 어떻겠냐 물었다. 

신부님은  출판을 미끼로 나를 성당에 온갖 단체에 들게 했고, 나는 이게 뭔가 하면서도 홀린 듯이 성당 캠프에 갔고, 단체에 가입했다. 그리고 신부님은 말했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 것 같아. 그는  몹시 불량 저자였고, 고수였다. 처음엔 속힌 기분이였지만, 그 덕분에 신부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고, 좋은 동네 친구를 잔뜩 얻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 모든 시작에 그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사를 하게 되면 멀리까지 와서도 늘 축복을 해줬다. "이런다고 해서 늘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라. 좋은 것은 좋은대로 즐기고, 힘든 일은 힘든대로 견뎌라" 허브솔트로 성수를 만들면서 그는 말했다. 그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뭐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좋은 일은 좋은 대로 즐기고, 힘든일은 힘든대로 견디면서 살고 있다. 훨씬 더 안락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신부님은 탄자니아 선교를 결심했고, 결국 오늘 떠났다.

나는 여전히 그 선택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선택을 한 그를 존경한다. 가기 직전에 만났을 때도 나는 고작, "요새 사는 거 되게 힘든데, 내일 모레 탄자니아 간다는 신부님 보면서 살아갈 힘을 얻네요" 따위의 농담을 했다. 나는 신부님과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사이라서 좋다. 신부님은 가끔 웃을 때 되게 장난꾸러기 같은데 요 며칠 그 웃음을 자주 생각했다. 건강하고 무사하게 돌아오시길, 아프지 마시고, 힘들지 마시길. 걷는 걸음 걸음이 꽃길일 수야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 나날들에 신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좋은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에 대하여 일상을 기록하다

최근 결혼을 앞둔 친구 P를 남편과 함께 만났고, 최근 결혼을 한 S 누나의 결혼 후 첫 집들이에 갔다

친구 P는 친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일년에 한 두번 정도 만나는 사이다. 재작년 겨울에 만나서 놓고 간 장갑을 그 다음해 겨울에 받은 적도 있었으니 말 다했지. 어쨌든 그녀는 나의 똘끼에 대해 미친 소리라고 정확하게 집어주면서도 언제나 나를 응원해줬다. 대화를 공놀이에 종종 비유하는데 그녀와의 공놀이는 대체로 즐겁고 유쾌했다. 그녀는 잘 들어주면서도 잘 얘기하는 사람이다.


그전에 만났을 때는 멘탈이 좀 흔들린달까, 뭔가 좀 붕떠있고, 불안해 보이는 느낌이 있었다. 파리로 영국으로 혼자 여행도 잘 다니더니 언젠가 부터 혼자 하는 여행은 이제 지겹다는 이야기를 했다. 몇 번의 연애 끝에 드디어 결혼해도 괜찮을 것 같은 남자를 만났다며 보여줬는데, 예의 그 유쾌함은 그대로지만 안정적이고 여유로워 보여서 마음이 놓였다. 좋은 남자는 상대를 그리 만들어 주는 구나 생각했다.


S누나는 좀 보헤미안 같은 사람이다. 시나리오를 썼고, 집은 아주 예쁘게 꾸몄지만, 언제고 훌쩍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고, 오지의 어느 곳에서 연락이 와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이 사람 만큼은 결혼 같은 걸 안할거라 생각했었다. 집은 S의 취향 대로 소박하면서도 아기자기 했다. 벽지나하, 소품하나에도 신경쓴 흔적들이 보였다. 나중에 술이 살짝 취한 그녀가 말했다.


"나도 결혼이란 걸 할 줄은 정말 몰랐어. 결혼을 하면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에 관한 가치를 포기하는 거라고 늘 생각해 왔거든. 그런제 지금 남편을 만나서 그것이 더 확장되고 넓어지게 되는 것 같아

정말이지 그때 그녀의 미소가 담고 있는 것은 오롯한 행복이였다.

 

PS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결혼, 행복, 사랑, 연애, 인생 같은 단어가 자꾸 머릿속을 떠다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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